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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유산

디지털 유산 관련 민법 개정안 요약 및 분석

by 또랑알 2025. 6. 30.

누구나 디지털 공간에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는 시대다. 사람들은 사진, 영상, 이메일, 블로그, SNS, 클라우드, 온라인 자산 등을 일상적으로 저장하며, 이들이 사망 후 남겨질 때 '디지털 유산'이 된다. 문제는 이 디지털 유산에 대해 한국 법제도는 아직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망자의 계정 접근권, 디지털 자산의 상속 대상 여부, 유족의 권한 등에 대해 기존 민법은 사실상 무대응에 가깝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국회에서는 디지털 유산을 민법 체계에 반영하려는 개정안을 일부 발의했다. 이 글에서는 2020년대 이후 발의된 디지털 유산 관련 민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요약하고, 한국 사회에 어떤 법적 변화와 의미를 가져올 수 있을지 4가지 측면에서 분석해본다.

디지털 유산 관련 민법 개정안

 

디지털 유산 관련 현행 민법의 문제점

현재 대한민국 민법은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민법 제1005조는 사망한 사람의 재산은 상속인의 소유로 이전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이 ‘재산’의 범위에 디지털 자산이 포함되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전통적인 상속은 부동산, 예금, 채권 등 물리적 또는 법률적으로 명확한 재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웹사이트 도메인, 유튜브 채널, 암호화폐, 클라우드 파일, 전자책 라이선스, 온라인 수익 계정 등 디지털 기반의 무형 자산이 실제 금전적 가치와 법적 권리를 가지게 된 상황이다.

문제는 이들 자산이 대부분 사용권 기반이라는 점이다. 즉, 사용자는 소유권이 아닌 '비독점적 사용 권한'을 플랫폼으로부터 부여받은 형태다. 이로 인해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이 과연 상속 대상인지, 상속인이 이를 어떻게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 법적 기준이 모호하다.

결과적으로, 유족이 사망자의 구글 계정, 카카오톡 대화, 클라우드 저장 파일 등에 접근하려 할 경우, 민법상 권리 주장이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이 많으며, 사기업의 약관이 실질적인 법률보다 우선 적용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발의된 디지털 유산 관련 민법 개정안 요약

이러한 현실적 문제를 인식한 일부 국회의원들은 2021년부터 디지털 유산과 관련된 민법 개정안을 발의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발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은 골자로 구성되어 있다.

 

개정안 주요 골자 (요약)

 

디지털 자산 정의 추가: 민법상 상속 대상에 ‘디지털 자산’이라는 항목을 명시

 

디지털 자산 목록화 권장: 사용자가 생전 자신의 디지털 자산을 목록화해 상속 문서에

함할 수 있도록 명문화

 

유족의 접근 권한 부여: 정당한 상속자가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 마련

 

플랫폼 의무화 조항 검토: 일정 자산 가치 이상일 경우, 플랫폼이 계정 소유자의 사망 사실 확인 시 유족 요청을 수용해야 함

 

해당 개정안은 디지털 자산의 법적 지위를 민법 안으로 끌어들여, 유족이 실제로 상속 집행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상속 대상이 되는 디지털 자산의 범위를 확대하고, 플랫폼과 유족 간의 권리 충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핵심이다.

민법 개정안의 법적·사회적 의미 분석

이번 개정안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사회는 다음과 같은 법적 및 사회적 변화를 맞이할 수 있다.

 

디지털 유산의 법적 지위 확립

무형의 디지털 정보가 상속법 체계 안에서 자산으로서 법적 권리를 갖는 첫 사례가 된다. 지금까지 디지털 자산은 법적 공백 속에 존재해 왔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유산 목록에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상속세, 유언장, 상속 분쟁 등에서 법적 기준을 갖게 된다.

 

플랫폼 독점 해소와 사용자 권리 확대

현재는 대부분의 디지털 자산이 ‘플랫폼 약관’에 의해 관리되는데, 이는 사용자의 사망 이후에도 플랫폼이 모든 권한을 가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민법 개정으로 상속권이 보장되면, 기업의 내부 정책보다 법이 우선 작용하는 구조로 개선될 수 있다.

 

유언장 및 생전정리 문화 촉진

개정안은 사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자산을 스스로 정리하고, 특정 계정의 처리 방식이나 전달 대상자를 지정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이는 디지털 유언장(Digital Will)이나 디지털 에셋 목록화와 같은 실천을 자연스럽게 촉진하며, 생전 정리 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유산 민법화의 한계와 실질 적용 과제

물론 이번 민법 개정안은 긍정적인 방향성을 제시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실질 적용의 복잡성

디지털 자산은 단순히 자산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SNS 계정은 정서적·사회적 가치가 크지만 금전적 가치는 명확하지 않다. 어떤 자산을 상속 대상으로 삼을 것인지에 대한 법적 범위 규정이 필요하다.

또한, 클라우드 내 개인 메모, 채팅 기록 등은 프라이버시 이슈와 맞물려 상속 대상이 아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민법에서 모든 디지털 정보를 일괄적으로 상속 자산으로 지정할 경우 사생활 침해와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플랫폼과의 협조 문제

국내외 플랫폼들은 각기 다른 계정 정책을 운영하고 있으며, 일부 글로벌 기업(구글, 애플 등)은 현지 법 적용을 제한적으로만 수용하는 방침을 고수한다. 즉, 한국 민법이 개정되어도 실제 플랫폼에서 유족에게 계정 접근을 허용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유족 간 분쟁 위험

디지털 자산은 금전적 가치 외에도 사적 감정이 포함된 정보들이 많다. 이를 상속하는 과정에서 유족 간의 해석 차이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사진, 편지, 영상 기록 등을 둘러싼 소유권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들을 감안할 때, 민법 개정안은 실질 적용을 위한 세부 지침과 플랫폼 연동 시스템이 함께 개발되어야 한다. 단순한 조문 신설로는 디지털 유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 법적 공백 해소를 위한 첫 걸음, 그러나 정교한 후속 작업 필요

디지털 유산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잇는 사회적, 법적 과제다. 지금까지는 플랫폼 약관과 관습적 대응에 의존해왔지만, 이제는 국가가 법적 기준을 마련해줄 차례다.
민법 개정안은 그 첫 출발점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며, 디지털 자산의 법제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법안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자산의 범위 정의, 유족 권한의 구체화, 사생활 보호 장치, 플랫폼 연동 시스템, 사회적 교육 등 복합적인 후속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디지털 유산은 우리가 남기는 마지막 기록이다. 그 기록이 존중받고, 보호받기 위해서는 법이 기술을 따라잡고, 사람의 권리를 우선해야 한다.
이번 민법 개정안이 단순한 형식적 조문에 머물지 않고, 사람의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실질적인 제도로 정착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