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이 사망한 이후 남기는 것이 단지 부동산이나 예금 잔고가 아니라, 온라인에 남긴 생각, 기억, 감정, 그리고 말투까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이제 고인의 사진, 음성, 채팅, 영상 기록을 바탕으로 실제와 유사한 **‘가상 인격(Digital Persona)’**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이는 생전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가족과 대화하고,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진화했다. 이처럼 살아 있는 듯한 디지털 복제본이 존재하는 시대에 우리는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 가상 인격은 상속될 수 있는가?" 디지털 유산의 정의는 과거의 SNS 계정이나 이메일 접근 권한을 넘어서, 이제 사람 자체의 재현물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AI 기술이 만들어낸 가상 인격의 법적 지위, 감정적 윤리적 문제, 상속 가능성, 그리고 향후 우리가 준비해야 할 지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디지털 유산의 미래는 바로 ‘디지털 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AI가 만든 ‘가상 인격’,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
AI 기술은 이제 단순한 정보 처리를 넘어 인간의 감정, 말투, 성격, 가치관까지 복제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음성 합성, 대화 시뮬레이션, 사진/영상 복원 기술이 결합되면서, 고인의 디지털 흔적만으로도 고인이 살아 있을 때와 유사한 대화가 가능한 ‘가상 인격’이 생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인이 남긴 5천 개의 카카오톡 메시지, 수백 장의 사진, 여러 개의 음성 메모, 블로그 글, 영상 기록 등을 AI가 학습하면 그 사람 특유의 언어 표현과 감정 패턴까지 재현이 가능하다. 이미 해외에서는 일부 가족들이 사망한 가족의 'AI 버전'과 정기적으로 대화하며 위안을 얻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디지털 레플리카(Digital Replica)’ 혹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실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인간 복제를 목표로 하며, 궁극적으로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해당 인격이 계속 활동하는 것도 가능하게 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가상 인격이 법적으로 또는 윤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즉, 기술적으로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가상 인격은 상속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상속법의 기본 원리는 ‘사망한 사람이 소유한 재산’을 법적으로 인정된 절차에 따라 후속 세대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상 인격은 ‘재산’이라기보다는 ‘존재’에 가까운 특성을 가진다.
가상의 내가 존재한다고 할 때, 그것을 내 자녀가 ‘소유’할 수 있는가? 아니면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하는가?
현행 한국의 민법이나 상속법에서는 ‘AI로 생성된 가상 인격’에 대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쟁점은 다음과 같다:
-지적재산권 문제: 가상 인격이 생성된 데이터는 고인의 데이터이지만, AI 알고리즘은 제3자의 것이며, 그 결과물은 누구의 것인가?
-인격권 및 초상권: 사망한 사람의 외모, 목소리, 말투를 그대로 구현한 가상 인격은 고인의 인격권 또는 유족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가?
-상속 가능성: ‘가상 인격’이 특정 상속자에게 이전되어 관리될 수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현재 일부 국가는 ‘디지털 유산 권리법’ 제정 논의를 시작했으며, 미국에서는 일부 주에서 사망자의 디지털 기록에 대한 유족 접근권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AI로 생성된 인격’ 자체를 자산으로 인정하고 상속 대상으로 명시하는 법은 아직 없다.
이는 향후 **‘디지털 생명권’ 또는 ‘디지털 인격권’**이라는 새로운 법적 틀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윤리적 문제: 우리는 누구의 동의로 ‘디지털 나’를 만들 수 있을까?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가상 인격을 만드는 행위는 단순한 코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망자의 동의 없이 가족이나 제3자가 그 사람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인격을 생성했을 때, 다음과 같은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고인의 의사와 무관한 디지털 재현은 윤리적으로 허용 가능한가?
-고인의 사생활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비공개 정보가 노출될 위험은 없는가?
-유족의 심리적 부담이나 정서적 충격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예를 들어, 고인이 생전에 디지털 복제를 원치 않았음에도, 남은 가족이 애도의 의미로 그 사람의 AI 인격을 만들어 운영한다면 이는 **‘디지털 인격 침해’**가 될 수 있다.
또한, 복제된 인격이 고인의 실제 성격과 다르게 표현될 경우, 이는 기억의 왜곡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된다.
따라서 향후에는 ‘디지털 인격 생성에 대한 생전 동의 절차’와 같은 윤리 가이드라인이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 정보 보호를 넘어서, 디지털 이후 시대의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 디지털 사후계획(Digital Afterlife Planning)
AI가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시대가 된 지금, 우리는 사망 이후를 위한 새로운 종류의 ‘유서’를 고민해야 한다. 이 유서는 단지 계좌번호나 부동산 목록을 적는 것이 아니라, 나의 디지털 인격과 그 사용 방식에 대한 사전 지시를 포함해야 한다.
실제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디지털 사후계획(Digital Afterlife Planning)’이 필요하다:
-나의 디지털 데이터를 어떤 플랫폼에 보관했는지 목록화
-특정 데이터를 가상 인격 생성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동의 여부 명시
-가상 인격이 존재할 경우, 누가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지정
-사망 이후 디지털 인격의 활동 범위, 보관 기간 등에 대한 조건 설정
-생전 AI 윤리 위원회나 법률 전문가와의 상담 기록 보관
이러한 계획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주요 플랫폼의 계정 유산 관리자 지정 기능과 연계할 수 있고, 암호화폐나 NFT 지갑의 복구 절차와도 연결할 수 있다.
앞으로는 ‘디지털 상속 설계사’나 ‘AI 유산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등장할 가능성도 크다.
결론: 디지털 인격의 시대, 유산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다
AI 기술이 ‘나’를 복제하고, 그 복제본이 사망 이후에도 살아 있는 듯 존재하는 시대. 이것은 단순한 SF 소설이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디지털 유산은 더 이상 파일이나 계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가 남긴 기억, 말투, 표정, 가치관, 감정이 모두 새로운 형태의 자산이 된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의사, 그리고 사후 권리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가상 인격도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인 만큼, 그 권리와 상속, 활용 범위는 철저히 사전 준비와 생전 의사에 따라 조율되어야 한다.
지금은 ‘디지털 나’에 대한 법과 윤리를 다시 쓰는 첫 번째 세대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내가 사망한 뒤, 나의 AI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직접 정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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