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삶은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 속에서도 깊이 기록되고 있다.
이메일, SNS, 블로그, 유튜브, 클라우드, 암호화폐 지갑 등, 각종 디지털 서비스 속에 개인의 기록과 자산이 저장되어 있다. 이들 디지털 자산은 단순한 정보나 데이터가 아니라, 때로는 수익이 발생하는 유산이기도 하고, 가족에게는 정서적인 상징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고인이 사망한 후, 이러한 디지털 자산을 누가, 어떻게 소유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현행 민법은 물리적 자산에 대한 상속을 규정하고 있지만, 디지털 자산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법적 절차는 아직 부족하다. 이로 인해 유족들 사이에서 “누가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느냐”, “어떤 자산은 누구 소유로 처리할 것인가”, “콘텐츠는 삭제할 것인가 남길 것인가” 등의 문제로 가족 간 분쟁이 벌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정서적으로 중요한 사진, 영상, 일기 등의 콘텐츠는 단순히 소유권 문제를 넘어서, 감정적인 갈등과도 직결된다.
이 글에서는 실제 발생한 디지털 유산 분쟁 사례들을 중심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디지털 자산 시대에 상속은 재산의 문제가 아닌, 관계와 감정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단순한 기술이나 법률로만 다룰 수는 없다.
분쟁의 시작: '접근할 수 있는 사람'과 '받고 싶은 사람'의 충돌
디지털 유산 분쟁은 대부분 ‘누가 계정에 접근 가능한가?’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어떤 가족 구성원이 고인의 노트북을 관리하고 있었다면, 해당 노트북에서 대부분의 이메일이나 사진, 클라우드 계정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다른 가족은 계정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 디지털 자산에 대한 통제권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여기서 “왜 너만 알고 있느냐”, “공평하게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예시 사례:
A씨의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한 후, 장남이 아버지의 구글 계정과 노트북을 관리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계정에 아버지가 남긴 사진, 메모, 문서 등이 모두 저장돼 있었고, 특히 구글 포토에는 고인이 손주들과 찍은 가족사진이 수천 장 보관되어 있었다. 장남은 이 계정에 접근 가능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판단으로 일부 사진만 가족에게 전달하고 나머지는 삭제했다. 이에 대해 둘째와 셋째는 “왜 혼자 판단했느냐”며 큰 갈등이 발생했다.
이처럼 디지털 유산은 ‘가치의 크기’보다 ‘감정의 비중’이 갈등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누가 먼저 접근했는가, 누가 더 애착이 있는가, 누가 더 정리할 책임이 있는가 등의 모호한 기준 속에서 정보의 독점은 곧 권력처럼 작용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가족 간 신뢰가 무너지고, 법적 절차 없이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금전적 가치가 개입될 때: 유튜브 수익, 암호화폐, 온라인 자산
디지털 유산이 감정의 영역에서만 머물면 상황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그러나 그 안에 금전적 가치가 명확한 자산이 포함되면 갈등은 훨씬 복잡해진다. 대표적인 예가 유튜브 채널, 애드센스 수익, 암호화폐 지갑, 인터넷 은행 계좌, 온라인 쇼핑몰 운영 수익 등이다. 이 자산들은 대부분 계정 기반으로 관리되며, 명의가 고인에게 있으나 법적으로 상속인에게 이전되지 않은 상태일 때 분쟁이 발생한다.
예시 사례:
B씨는 6년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월 평균 100만 원 이상의 광고 수익을 받고 있었다.
사망 후 채널은 그대로 운영되었고, 구글 애드센스 계정에서 수익도 계속 발생했다. 장례 이후 장녀가 해당 채널에 대한 접근 권한을 가지게 되었고, 수익도 그녀의 계좌로 이체되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는 "채널은 가족 모두의 추억이고, 수익도 공동 상속 대상"이라 주장하며 갈등이 발생했다. 결국 가족 간 소송까지 진행되었고, 법원은 '상속 대상 자산에 포함되며, 법적 유언장에 언급이 없으므로 상속비율대로 분배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사례는 디지털 자산의 명의와 실질 소유권이 일치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암호화폐의 경우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아, 수익이 아닌 ‘소멸’이라는 더 큰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금전적 디지털 자산은 생전 정리 없이는 가족 간 신뢰를 깨뜨리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콘텐츠 삭제 vs 보존: 고인의 의사와 가족의 해석 차이
디지털 유산 중에는 글, 사진, 영상처럼 ‘정서적 자산’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단순히 소유를 넘어서 보존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인이 생전에 “이런 건 나중에 다 삭제해줘”라고 말했을 수 있고, 반대로 가족은 “이건 남겨야 할 기록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보존이냐 삭제냐의 갈림길에서 가족 간 해석의 차이는 또 하나의 갈등을 유발한다.
예시 사례:
C씨는 블로그를 15년간 운영해왔다. 생전에 그는 지인에게 “내가 죽으면 이 블로그는 닫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망 후, 자녀들은 블로그 글을 모두 백업한 후 ‘기념 계정’으로 유지하려 했고, 결국 유족들 간 감정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일부 가족은 ‘고인의 유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부는 ‘우리에게 소중한 기록’이라며 계정 유지를 강하게 원했다.
이런 사례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유산의 처리는 결국 사람의 감정, 기억, 관계, 해석의 차이로 인해 갈등의 여지가 생긴다.
특히 ‘의미 있는 기록’일수록 보존 여부는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판단이 된다.
이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려면 고인이 생전에 명확하게 정리해두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분쟁을 막기 위한 생전 준비 전략
투명성, 지정, 문서화
디지털 유산 분쟁을 예방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고인이 생전에 미리 준비하고,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이 효과적이다.
계정 목록 및 자산 정리표 작성
고인이 사용 중인 주요 디지털 자산을 목록화하고, 각각의 목적과 중요도, 상속 여부를 정리해두면 가족이 혼란 없이 정리할 수 있다.
디지털 유언장 작성
블로그, SNS, 유튜브, 클라우드 계정 등에 대해 “삭제 / 보존 / 이관” 여부를 문서화하여 남겨두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법적 유언장에 포함시켜 공증하면 더 좋고, 별도 문서라도 유족에게 전달된다면 실질적인 지침이 된다.
관리자 지정 및 공유 방식 결정
가장 신뢰하는 가족 한 명을 디지털 유산 관리인으로 지정하고, 계정 접근 정보(백업코드, 비밀번호 등)를 암호화된 형태로 전달하거나, 안전한 보관 위치를 함께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생전 가족과 충분한 대화 나누기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내 콘텐츠와 자산에 대해 내 생각과 의사를 가족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논의해두면 사후에 가족 간 해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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