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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유산

디지털 유언,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by 또랑알 2025. 7. 1.

-디지털유산 시대의 유언 개념이 바뀌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과거에는 마지막 말을 종이에 남기는 방식으로 유언을 남겼지만, 지금은 삶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 공간에 존재한다. 이메일, 사진, 영상, 소셜미디어, 클라우드 자료처럼 사적인 기록과 자산들이 인터넷과 서버에 저장되는 시대가 되면서 ‘디지털유산’이란 개념이 등장했다. 이와 함께 ‘디지털 유언’이란 개념도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실제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들은 사용자의 사망 이후 계정 처리 기능을 제공하고 있고, 암호화폐를 비롯한 디지털 자산은 법적 상속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서 인간이 죽음을 대하는 문화적 관점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유언은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닌,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디지털 유산 시대의 유언 개념

 

 디지털 유언이 필요한 배경 – 왜 지금 중요한가?

현대인의 삶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더 많이 남는다. 하루 중 수십 번 이상 사용하는 스마트폰은 문자, 사진, 위치 정보, 음성 기록을 자동으로 저장하고 있으며, SNS에는 개인의 감정과 인간관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처럼 방대한 디지털 정보는 개인의 정체성과 기억을 구성하는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이 자산에 대한 사후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했을 경우, 남겨진 가족은 고인의 계정에 접근하지 못하고 중요한 데이터나 재산을 잃을 수 있다.
디지털유산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법적·정서적 가치를 지니는 자원이 되었다. 디지털 유언은 이러한 자산을 체계적으로 분배하고 관리하도록 돕는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인의 유튜브 채널이 광고 수익을 창출하고 있었다면?
암호화폐 지갑에 수천만 원이 들어 있었다면?
이 모든 것이 유언 없이 방치된다면, 유산은 사라지거나 법적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유언의 구성 –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디지털 유언은 종이 유언장과 달리 보존 방식과 해석 방식에서 완전히 다르다.
:
① 디지털 자산의 분배, ② 디지털 정체성의 관리. 이 유언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① 디지털 자산의 분배
암호화폐, 인터넷은행 계좌, 온라인 쇼핑 포인트, NFT, 디지털 저작물 등이 포함된다.
이들은 대부분 비밀번호와 2차 인증으로 보호되기 때문에, 사망 후 가족이 이를 접근하기 어렵다. 따라서 디지털 유언에서는 접근 방법, 계정 정보, 관리 권한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일부는 ‘비밀번호 관리자(Password Manager)’를 통해 미리 설정해 두기도 한다.

 

② 디지털 정체성의 관리
이 항목은 감정적·윤리적 가치가 크다. 고인의 SNS 계정을 삭제할 것인지, 추모용으로 전환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며, 사진과 글을 어떻게 보관할지도 결정해야 한다.
‘구글 사후 계정 관리자’, ‘페이스북 추모 계정 전환 기능’ 등은 이 항목을 실행하는 대표적인 예시다.

디지털 유언은 일반 유언장에 덧붙이는 형태로도 가능하며, 일부는 영상이나 텍스트 파일로 디지털 유언만 따로 남기기도 한다.
중요한 점은 유언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전달하거나 법적으로 인증 받아야 실효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디지털 유언이 사회에 미칠 영향 – 새로운 애도 문화의 탄생

디지털 유언은 단지 유산을 나누는 문서가 아니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고인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애도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망자가 생전에 남긴 블로그 글, 메신저 대화, 영상 편지는 그 자체로 ‘디지털 추억’이 된다.
디지털 유언을 통해 "이 자료는 가족에게 남기고 싶다", "이 계정은 삭제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하면, 남겨진 사람은 고인의 의사를 존중하면서도 정서적으로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새로운 형태의 장례 문화가 등장할 수 있다. 온라인 추모 페이지, 디지털 묘지, 가상현실 속 추모 공간은 실제로 시도되고 있으며, 디지털 유언은 그 중심에 있다.
가족이나 지인이 고인의 SNS에 마지막 글을 남기거나, 고인이 생전에 지정한 ‘디지털 친구’가 추모 글을 관리하는 구조도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유산이 단지 사후 처리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변화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적·윤리적 과제 – 디지털 유언은 공식화될 수 있을까?

디지털 유언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법적 인정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디지털 유언을 독립적인 법률 개념으로 명확히 정의하지 않았다.
전자 문서, 이메일, 클라우드 파일로 남긴 유언이 법적 유언으로 인정받으려면, 서면, 공증, 목격자 등의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이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둘째는 개인정보보호와 유언 집행 간의 충돌이다.
고인의 계정에 접근하려면 개인정보 보호 정책을 우회해야 하는데, 이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의 플랫폼은 일부 유언 집행 절차를 마련했지만,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셋째는 윤리적 문제다.
고인이 남긴 사진이나 글이 공개될 경우, 사적인 감정이나 관계가 노출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디지털 유언에는 ‘무엇을 공개하고, 무엇을 삭제할지’에 대한 선택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이를 집행하는 사람의 도덕적 책임도 동반된다.

넷째는 기술 격차 문제다.
노년층은 디지털 유언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기술적 방법을 모를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족 간 정보 불균형이 생기고, 고인의 디지털 자산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려면 디지털 유언에 대한 교육과 서비스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 (요약 및 제언)

디지털 유언은 단순한 편의 기능이 아니다. 디지털유산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죽음의 문화이며, 기술과 감정, 법과 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사람은 생전에 어떤 디지털 흔적을 남기고, 어떻게 사라지기를 바라는가?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것이 디지털 유언의 시작이다.

디지털 유언이 문화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법적 제도 마련, 플랫폼 정책 개선, 대중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의 흔적을 스스로 정리하고 타인에게 남기는 용기와 책임이다.
디지털 유언은 결국,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