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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유산

디지털 정체성과 프라이버시: 죽은 자의 개인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by 또랑알 2025. 7. 1.

현대인의 삶은 점점 더 디지털 환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스마트폰, SNS, 클라우드, 이메일, 유튜브, 디지털 지갑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수많은 디지털 흔적을 남긴다. 이러한 흔적은 단지 정보에 그치지 않는다. 감정, 관계, 사고방식, 소비 패턴, 인생철학까지 모두 데이터로 기록되며, 결국 하나의 디지털 정체성을 형성한다. 이 디지털 정체성은 사망 이후에도 온라인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디지털유산’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죽은 자의 디지털 정보는 누구의 소유인가? 프라이버시의 권리는 죽음과 함께 끝나는가, 아니면 계속 보호되어야 하는가? 이 글에서는 사망 이후 디지털 정체성과 개인정보를 둘러싼 프라이버시 문제를 4개의 관점에서 심도 있게 탐구해본다.

디지털 유산 죽은 자의 개인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디지털 정체성은 ‘재산’인가, ‘인격’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속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부동산, 예금, 보험 등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는 유튜브 채널, 블로그 콘텐츠, SNS 계정, 이메일 자료 등도 자산의 범주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디지털유산으로 간주되며, 실제로 암호화폐, NFT, 디지털 저작물처럼 금전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산은 법적 상속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개인 정보와 사적인 기록은 재산이라기보다는 ‘인격’에 가까운 요소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일기 형식 블로그에는 가족에 대한 불만, 과거의 연애, 개인적인 트라우마 같은 민감한 정보가 담겨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은 고인의 디지털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지만, 동시에 프라이버시의 핵심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디지털 정체성이 재산처럼 상속될 수 있는가, 아니면 인격처럼 보호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디지털 자산을 명확히 상속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았고, 디지털 인격에 대한 권리도 아직 법제화되지 않았다.
그 결과, 고인의 기록이 가족에 의해 공개되거나 삭제되는 상황에서 고인의 의사나 프라이버시는 무시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즉, 디지털 정체성은 인격적 요소와 재산적 요소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성격을 명확히 구분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제도와 기준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는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가?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대부분 생존자 중심의 구조를 갖고 있다.
한국의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에 따르면 ‘개인정보’란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를 의미하며, 사망자의 정보는 법적으로 개인정보가 아니다.

이 말은 즉, 사망자의 정보는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망자의 정보는 여전히 민감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유가족이 고인의 이메일을 열어보거나, 사적인 채팅 기록을 확인하거나, SNS 메시지를 공개하는 경우,
그 내용이 고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사회적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고인이 생전에 “이 자료는 공개하지 말라”고 했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가족이나 제3자가 이를 무시하고 공개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망자의 사적인 기록이 유언과 다르게 활용되거나, 때로는 고인을 욕되게 만드는 방식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프라이버시는 살아 있는 동안에만 보장된다는 전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죽음 이후에도 고인의 의사와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사후 프라이버시는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윤리적 논의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디지털 유산을 둘러싼 가족과 제3자의 권리 충돌

사망자의 개인정보를 둘러싸고 가장 자주 벌어지는 상황은 가족과 플랫폼, 또는 가족 간의 권리 충돌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용자가 사망하고 구글 계정을 남긴 경우, 가족이 그 계정에 접근하고 싶어 해도 구글의 정책상 계정 권한은 제3자에게 이전되지 않는다.
이때 가족은 고인의 자료를 열람하거나 백업받을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해 고인의 사진이나 문서, 금융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대로, 가족이 고인의 SNS 계정에 접근하여 추모글을 작성하거나 사진을 공개하는 상황에서는
고인의 의사를 무시한 정보 공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인이 숨기고 싶었던 과거 연애 사진이나 개인적인 메시지를 유가족이 무심코 공개했을 경우,
그 정보는 다시 사회에 퍼지고, 고인의 사생활은 사후에도 노출되는 위험에 놓이게 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가족 간의 의견 충돌이다.
어떤 가족은 “고인의 블로그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가족은 “사생활 노출이 걱정되니 삭제하자”고 요구하기도 한다.
정해진 지침이나 고인의 명확한 유언 없이 디지털유산을 처리하면, 결국 남겨진 이들의 판단에 따라 고인의 프라이버시가 좌우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러한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망자의 디지털 정체성과 개인정보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고인의 생전 의사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기준이 필요하다.

 사망자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제도와 개인 전략

현재까지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사망자의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부재하다.
따라서 사후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디지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도적 정비와 개인의 사전 준비가 동시에 필요하다.

제도적 측면

-사후 개인정보 보호법 제정
사망자의 데이터가 공공에 공개되지 않도록 명시하고, 가족이나 제3자가 고인의 정보를 열람하거나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고인의 생전 의사를 최우선으로 보장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디지털유산 상속 기준 마련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 사망 시 계정과 콘텐츠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명확히 규정해야 하며, 이를 사용자가 생전에 설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나 페이스북의 추모 계정 기능은 그 대표적인 예다.

 

-공공기관의 중재 시스템 도입
유가족 간의 정보 접근권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기관이 마련되어야 하며, 고인의 디지털 자산과 프라이버시에 대해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원회가 필요하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준비 전

 

디지털 유언 작성

 

계정, 사진, 영상, 메시지 등에 대한 삭제/보존 여부를 명확히 기재

 

각 자산의 접근 권한자 지정 및 데이터 처리 방식 설명

 

공증 또는 영상 유언 형태로 기록

 

 

계정 설정 활용

 

구글, 페이스북 등 주요 플랫폼의 사망자 계정 처리 기능을 미리 설정

 

"이 계정은 삭제", "이 계정은 지정인에게 넘기기" 등을 선택할 수 있음

 

민감한 정보 암호화 및 비공개 처리

 

생전에 민감한 기록은 비밀번호 설정, 삭제 예약 기능, 외부 공개 제한 조치 필요

 

예를 들어 클라우드 폴더에 민감 콘텐츠를 ‘삭제 전용’ 폴더로 구분하여 설정 가능

 

 

가족과의 사전 협의

“내 디지털유산 중 이건 꼭 지켜달라”는 내용을 미리 공유

 

유서와 함께 디지털 기록 관련 별도 문서 작성하여 전달

이처럼 사망자의 디지털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면 제도적 기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본인이 자신의 디지털 정체성과 유산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이다.

 

결론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삶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기술과 연결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디지털 정체성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와 인격, 삶의 방향을 담은 흔적이다.
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은 사망 이후에도 존중되어야 하며, 디지털유산으로 남은 정보가 고인의 의사에 따라 처리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 영역이 법과 윤리의 경계에 서 있는 문제지만,
앞으로 디지털 세대가 늘어나고 사후 데이터가 폭증하는 시대에서는 사망자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디지털 정체성 관리가 새로운 사회적 질서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디지털유산을 남기게 된다.
그렇다면 그 유산이 내가 의도한 나의 모습으로 기억되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