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 유산 상속 관련법 현황과 문제점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개인의 삶의 양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오늘날 사람들은 물리적인 자산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에도 다양한 형태의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메일, 사진, 동영상, 블로그, 유튜브 채널, SNS 계정, 암호화폐, 온라인 쇼핑몰 수익, 디지털 지갑 속 자산 등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경제적·정서적·사회적 가치를 지닌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이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법률체계는 이처럼 새로운 형태의 자산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민법과 상속법은 ‘유체물’을 중심으로 자산을 정의해왔으며, 디지털 자산은 그 성격상 무형이기 때문에 기존의 법체계에 정확히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유족 입장에서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거나 상속 절차를 진행하려 할 때 실질적인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저작권법 등 디지털 자산과 연관된 다양한 법률들이 상충하는 경우도 많아, 디지털 유산의 상속은 단순한 절차 이상의 복잡한 법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 국내에서 디지털 유산과 관련된 법률이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향후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의 단초를 제시한다.
디지털 유산의 개념과 범위: 상속법의 인식에서 소외된 자산
디지털 유산이란 사망자가 생전에 온라인 공간에 남긴 정보 자산을 의미하며,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디지털 자산으로, 암호화폐, 온라인 계좌, 인터넷 쇼핑몰 수익, 광고 수익, 웹사이트 수익 등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는 비경제적이지만 정서적 가치가 큰 자산으로, 가족 사진, 동영상, 이메일, 개인 기록, 블로그, SNS 계정 등이 있다.
국내 민법 제1005조는 상속의 대상을 ‘재산상 권리 및 의무’로 정의하고 있으나, 디지털 자산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은 없다. 이는 유족이 디지털 자산에 접근하려 할 경우, 법적 지위를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든다.
예를 들어, 고인의 이메일에 남겨진 중요한 투자 정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계정 제공업체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개인정보 보호법은 원칙적으로 본인 외 제3자에게 정보 제공을 금지한다. 이런 모순된 구조로 인해 디지털 유산은 현실적으로 상속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상속이 불가능한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디지털 유산의 가치가 물리적인 자산처럼 명확하게 측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구독자 수 5만 명의 유튜브 채널은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지만, 그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분할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법률상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 관련 법률의 현황과 적용 한계
현재 디지털 유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국내 법률은 존재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법률들이 있다. 이들 법률은 서로 충돌하거나 해석상 혼란을 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1) 민법
-상속 재산의 정의에 디지털 자산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판례에서도 디지털 자산의 상속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은 없다.
2)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는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망자의 정보는 ‘개인정보’의 범위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하나, 명확한 기준이 없다.
3) 정보통신망법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사용자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열람하거나 제공할 수 없다.
-유족이 사망자의 계정 접근을 요청해도 서비스 제공자가 이를 거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4) 저작권법
-블로그 글, 사진, 영상 등의 콘텐츠는 고인의 저작물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상속 대상으로 인정될 수 있으나, 플랫폼의 정책이나 접근 제한이 걸림돌이 된다.
5) 전자금융거래법
-암호화폐와 같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규율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상속 관점에서의 접근 규정은 미비하다.
이처럼 복수의 법률이 얽혀 있지만, 디지털 유산을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법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유족이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하려면, 민사 소송을 거쳐야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하지만 판례도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인 법적 구제는 어려운 실정이다.
유족이 겪는 실제 문제와 사례 분석
유족이 겪는 실제 문제와 사례 분석
디지털 유산의 상속과 관련된 실질적인 문제는 유족의 입장에서 매우 현실적이며 긴급한 문제다. 다음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사례 1) 암호화폐 지갑에 접근하지 못한 가족
A씨는 비트코인을 수년간 보유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런 사고로 사망했다. 가족은 A씨가 암호화폐 지갑에 상당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비밀번호를 몰라 전혀 접근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수천만 원 상당의 자산이 영구히 봉인되었다.
사례 2) 이메일 속 금융 정보 접근 불가
B씨는 사망 후 가족이 금융 정보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이메일 계정 접근이 불가능했다. 이메일 제공업체에 요청했지만, 개인정보 보호법을 이유로 계정 접근이 거부되었다.
사례 3) 유튜브 채널의 수익 정지
C씨는 구독자 수 10만 명 이상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다 사망했다. 유족은 수익 계정과 연동된 애드센스를 관리하고자 했지만, 채널 소유주 사망으로 인해 계정 소유권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채널은 정지되었고 수익도 중단되었다.
이처럼 디지털 유산은 현실적으로 상속 절차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법률의 미비로 인해 유족들은 정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기술적 제한으로 자산을 상실하는 결과를 겪고 있다.
제도적 개선 방향과 향후 과제
디지털 유산의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한 법률 개정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와 기술적 인프라 구축도 요구된다.
1) 디지털 자산의 법적 정의 정립
민법 또는 특별법을 통해 디지털 자산을 명시적 상속 대상으로 규정해야 한다.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정서적 가치가 있는 비경제적 자산도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
2) 사망자 정보에 대한 특별 규정 마련
개인정보 보호법 또는 정보통신망법에 ‘사망자의 정보 처리’에 대한 특별 조항을 마련하여, 정당한 유족이 고인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
3) 디지털 유언장 시스템 도입
생전에 디지털 자산을 누구에게 어떻게 넘길 것인지 지정할 수 있는 전자 유언장 제도를 법제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계정, 암호, 파일, 서비스 등을 지정된 수령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4)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 강화
구글, 애플, 네이버 등 주요 플랫폼에 디지털 상속 지원 의무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유족 요청 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계정 이전 또는 백업을 제공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5) 사회적 인식 개선
국민들이 디지털 자산 정리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생전에 스스로 정리하도록 유도하는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하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자산 보호와 상속의 표준을 마련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법과 제도가 디지털 삶의 현실을 따라잡아야 할 시점이다.
결론: 디지털 유산 상속은 개인의 권리이자 사회의 과제
디지털 자산은 이제 단순한 개인 정보가 아닌, 상속의 대상이자 중요한 권리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법률체계는 여전히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족들은 정보 접근조차 하지 못한 채 사망자의 자산을 잃어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디지털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유산을 보호하고, 정당한 상속 절차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디지털 공간 속에서도 ‘권리’와 ‘책임’이 함께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금이 바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