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의 디지털 유산 보호 법안 소개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삶 전반을 지배하는 오늘날, 개인이 소유하는 자산은 물리적인 한계를 넘어섰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 이메일, 소셜 미디어 계정, 온라인 금융 계좌, 암호화폐, 스트리밍 콘텐츠 구독권 등은 모두 새로운 형태의 자산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흐름은 기존의 상속법 체계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죽은 후, 그가 남긴 디지털 자산은 어떻게 상속되는가?’라는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이슈가 아니라, 법률과 사회 윤리의 근본적인 재정립을 요구하는 과제가 되었다.
미국 내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한 입법적 논의는 점차 확산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가장 선도적인 주 중 하나가 바로 **캘리포니아(California)**다. 고도로 디지털화된 경제 생태계와 기술 기업들의 본거지인 캘리포니아는, 디지털 유산 관리 및 상속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위해 2017년부터 관련 법률을 본격적으로 시행해오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디지털 유산 보호 법안을 중심으로, 해당 법안의 배경과 주요 내용, 적용 방식, 현실적 한계 및 개인이 대비할 수 있는 전략을 다섯 개의 항목으로 나누어 심층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디지털 자산이 남겨진 가족과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지며, 법이 이를 어떻게 규율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일은 모든 디지털 사용자에게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로 다가오고 있다.
캘리포니아 디지털 유산 법의 입법 배경과 도입 과정
미국은 연방 단위의 단일 상속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 자산 상속 문제는 각 주의 입법 권한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접근되어 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캘리포니아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법적 공백을 보완하고자, **2017년 1월 1일부로 ‘RUFADAA’(Revised 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 개정 통일 수탁자 디지털 자산 접근법)**를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다.
이 법은 미국 내 Uniform Law Commission이 제정한 모델 법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디지털 자산이 포함된 재산의 상속 및 관리 권한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RUFADAA는 수탁자(Executor, Trustee, Agent 등)에게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동시에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와 생전 의지를 존중하는 균형을 유지한다.
캘리포니아 주는 실리콘밸리와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등 대규모 IT 기반 경제권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디지털 자산에 대한 입법적 대응이 다른 주보다 빠르게 전개되었다. 특히 구글, 페이스북, 애플, 넷플릭스 등 글로벌 IT 기업의 본사가 위치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유산과 관련된 법적 문제는 일상적인 사회적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
캘리포니아 RUFADAA 법안의 핵심 내용과 적용 범위
RUFADAA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사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자산에 대한 접근 권한을 특정인에게 위임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이 법은 기존의 일반 민법이 포괄하지 못하던 디지털 콘텐츠의 상속과 관리에 대해 명문화된 규정을 제공한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온라인 툴(Online Tool)의 우선 적용
디지털 자산을 보유한 플랫폼(예: 구글, 페이스북 등)에서 제공하는 사전 설정 기능을 통해, 사용자는 생전에 특정인에게 콘텐츠 접근 권한을 부여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이는 유언장보다 우선하는 법적 효력을 갖는다.
법적 수탁자의 권한 인정
유언장, 신탁, 위임장 등에 의해 지정된 수탁자(Fiduciary)는 고인의 디지털 자산에 접근할 수 있으며, 플랫폼은 이를 정당한 요청으로 간주하여 일정 수준까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개인 프라이버시 존중
사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자산을 보호하거나 공개를 금지하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 수탁자라 하더라도 이에 반하는 접근은 허용되지 않는다.
플랫폼의 기술적 보호조치 존중
법적 요청이 있다고 하더라도, 플랫폼이 자체 보안 정책에 따라 특정 데이터에 접근을 제한하는 것은 허용된다. 이로 인해 법률과 기술 간의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적용 범위:
이 법은 이메일, 클라우드 파일, SNS 계정, 디지털 지갑, 도메인, 온라인 구독 서비스, 사진 및 동영상 콘텐츠 등 모든 온라인 자산에 적용된다. 다만, 구체적인 데이터 제공 범위는 플랫폼의 정책에 따라 다르며, 암호화폐 지갑 등은 별도의 법적 절차를 요구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법의 실무 적용 사례와 한계점
RUFADAA가 제정된 이후, 캘리포니아에서는 다수의 디지털 유산 상속 사례가 발생하였다. 법률 사무소, 은행, 플랫폼 기업, IT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고인의 디지털 자산을 회수하거나 관리하는 데에 있어 보다 명확한 기준이 생겼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 특히 생전에 온라인 툴을 활용한 사용자의 의사가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 수탁자의 접근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여전히 몇 가지 중대한 한계가 존재한다.
첫째, 플랫폼의 기술 정책과 법의 충돌이다. 예를 들어 구글이나 애플의 경우, 법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특정 데이터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와 보안 보호를 이유로 든다. 결국 유족이나 수탁자는 데이터 접근을 위해 법원 명령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둘째, 암호화폐 및 분산형 플랫폼의 처리 미비이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블록체인 기반 자산은 법적 권한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진다. 개인 키(Private Key)를 생전에 남기지 않았다면, 해당 자산은 영구히 접근이 불가능해진다. 이 점은 현행 법률이 기술 발전을 완전히 따라가지 못하는 대표적인 예시다.
셋째, 생전 설정의 미비이다. RUFADAA는 기본적으로 사용자의 생전 설정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많은 사용자가 디지털 유산 개념에 익숙하지 않아 온라인 툴이나 위임 설정을 하지 않은 채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수탁자의 권한
이 법적으로는 인정되더라도, 플랫폼 접근은 여전히 차단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실무적 한계는 향후 디지털 유산 관리에 있어 기술과 법, 그리고 사회적 인식 간의 균형이 더욱 필요함을 시사한다.
개인이 준비할 수 있는 디지털 유산 관리 전략
RUFADAA와 같은 법률이 존재하더라도, 디지털 유산 문제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생전 준비에 달려 있다. 캘리포니아 주민 또는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개인이 디지털 자산의 안전한 상속을 원한다면, 다음과 같은 전략적 준비가 필요하다.
첫째, 온라인 툴 설정을 활용해야 한다. 구글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Google Inactive Account Manager), 페이스북의 추모 계정 설정 등은 법적 효력을 가지며, 수탁자에게 직접적인 접근 권한을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유언장보다 우선 적용되므로, 반드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디지털 유산 목록 작성 및 암호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모든 온라인 계정, 플랫폼, 자산 정보와 함께 로그인 정보 및 2단계 인증 절차를 정리하고, 이를 암호화된 방식으로 보관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법률 전문가에게 위임해야 한다.
셋째, 법적으로 유효한 디지털 유언장 작성이 요구된다. 일반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 항목을 명시하고, 수탁자에게 법적 권한을 위임하며, 개인정보 보호 관련 의사 표시까지 포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증 및 변호사의 자문을 받는 것이 현실적이다.
마지막으로, 가족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사망 이후 유족이 디지털 유산과 관련하여 혼란을 겪지 않도록, 생전부터 디지털 자산에 대한 설명과 위임 의사를 명확히 밝혀두는 것이 필요하다.
결론: 법은 진화 중이며, 준비는 개인의 몫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디지털 유산 보호 법안, RUFADAA는 디지털 시대에 부응하는 진일보한 입법적 시도이다. 이 법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법적 권리를 인정하고, 수탁자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물리적 유산 중심의 전통적 상속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법은 완전하지 않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개인 프라이버시와 데이터 보안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보호되어야 한다. 결국 디지털 유산 문제는 개인이 얼마나 준비하고, 자신의 의지를 생전에 어떻게 명확히 표현하는가에 달려 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각 주가 보여주고 있는 입법적 움직임은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자산 상속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흐름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개인의 디지털 유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