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유산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국내 법제도 미비점 분석

또랑알 2025. 7. 7. 12:31

현대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일상이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사람들은 사망 이후에도 온라인상에 다양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이메일, 소셜미디어 계정, 디지털 사진, 유튜브 채널, 온라인 금융자산, 암호화폐 등은 모두 디지털 유산에 해당한다. 이러한 자산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법적·경제적 가치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생전 정리와 사후 승계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행 민법은 전통적인 유산 상속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정의와 처리 기준이 매우 미비한 실정이다. 본 글에서는 디지털 유산 상속과 관련한 국내 법제도의 미비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향후 입법 방향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국내 법제도 미비점 분석

 

 

디지털 유산의 개념과 현행 민법의 한계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은 고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디지털 플랫폼상의 자산이나 정보, 데이터 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고인이 남긴 이메일 계정,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클라우드 저장소, 블로그, 온라인 게임 자산, 암호화폐 지갑 등이 모두 디지털 유산의 범주에 포함된다.

대한민국 민법은 상속의 대상을 ‘재산’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재산의 개념은 대부분 물리적 자산이나 금융 자산에 국한되어 있다. 따라서 디지털 콘텐츠와 같은 무형 자산의 법적 지위는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법적 공백은 실제로 유족들이 고인의 온라인 계정이나 자료에 접근하고자 할 때, 사업자 측의 정책이나 국제법적 절차에 따라 제한받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 계정이나 이메일 계정은 대부분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타인 접근 금지’ 원칙을 적용받는다. 이로 인해 상속인의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정당한 절차를 갖추더라도 계정 복구가 어렵다. 현행 법제는 디지털 자산의 보존·이전·삭제 등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며, 사업자 약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자산의 유형별 처리 문제와 법적 공백

 

디지털 유산은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자산(예: 암호화폐, 가상화폐 지갑, 온라인 콘텐츠 수익, 전자지갑 등)이고, 둘째는 정서적·기록적 가치가 있는 자산(예: 사진, 영상, 일기, 이메일 등)이다. 이들 자산은 성격에 따라 상속 방식도 달라야 하지만, 현행 법률에서는 이러한 분류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암호화폐와 같은 디지털 금융자산은 실질적인 재산으로 간주되나, 비밀번호나 복구 키를 유족이 모를 경우 자산 접근이 영구히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문제는 국내외에서 다수 발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은 부재하다. 또한 구글,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각기 다른 계정 사후처리 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대부분은 해당 국가의 법률보다 자체 약관에 따르고 있다. 이는 법적 일관성을 해치고, 상속인의 권리를 불명확하게 만든다.

국내에서는 유족이 디지털 자산에 접근하려면 일일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문의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불합리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는 유산 상속의 원칙인 '자동 승계' 원칙에도 어긋나는 부분이다.

 

 해외 법제와의 비교: 한국의 입법 지연 문제

 

미국에서는 이미 일부 주(州)에서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미국 통일법위원회(NCCUSL)가 제정한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는 사망자가 남긴 디지털 자산에 대해 상속인이 일정한 절차를 통해 접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상속인의 권리를 조화롭게 다루고 있으며, 사전에 유언장이나 유산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한다.

유럽연합(EU) 역시 개인정보 보호를 전제로 하면서도, 디지털 유산에 대한 일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는 법원 판례를 통해 디지털 자산의 상속 가능 여부를 인정한 바 있으며, 국가 단위로 사후 데이터 처리 권한을 명시한 법안이 존재한다.

반면 대한민국은 아직 디지털 유산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단독 법안이 없다. 일부 정치권에서 관련 입법을 시도한 적은 있으나,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기업 반발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국내 사용자들은 사망 후 디지털 유산이 사실상 무주물로 처리되거나, 플랫폼 사업자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삭제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향후 입법 방향과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

 

디지털 유산의 상속 문제는 단순히 법률 개정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와 기술·법·윤리 전반에 걸친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첫째,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을 민법상 재산의 범주에 명확히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입법적 정의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물리적 재산과 동등한 상속 대상임을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둘째, 디지털 자산 관리에 대한 유언장 작성 및 생전 설정 기능을 제도화해야 한다.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나 애플의 'Legacy Contact' 기능처럼, 사용자가 생전에 데이터를 누구에게 어떻게 넘길 것인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유족이 해당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사업자 측의 책임도 강화되어야 한다. 디지털 플랫폼은 사용자 사망 시 데이터 보존 기간, 삭제 정책, 유족의 접근권한 등을 사전에 명확히 고지하고, 공정한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법 또한 유족의 권리와 조화롭게 재조정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문제는 모든 세대가 경험하게 될 보편적인 과제이므로, 정부·법조계·시민단체·IT업계가 함께 논의하는 사회적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디지털 자산은 이미 일상의 일부이며, 더 이상 무형의 부차적 자산이 아니다. 생전에는 자산으로 기능하고, 사후에는 유산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법과 제도가 절실하다.

 

결론 : 디지털 유산 상속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를 넘어서, 법적·사회적·윤리적 맥락에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한국의 현행 법제도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없고, 상속 절차를 명시하지도 않아 유족이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국제적 흐름과 국내 현실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입법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사회적 합의와 다각적인 정책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디지털 사회가 성숙해질수록, 그 이면에 남겨지는 유산도 성숙한 방식으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